선교사의 경건 생활
선교사의 경건생활
- 한도수 선교사 (바울선교회 본부장) - 관계는 좋은가? 학위는 있는가? 라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선교사역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와같은 것들을 갖추기 위하여 선교사들은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훈련 하고, 편지쓰고, 방문하고,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린다. 있다고 해도 선교사의 경건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 모든것들은 인간적인 사업이 될 것이고 선교사역은 패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로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트니라(딤전6:3~5)'고 했다. 흘리며 감격속에 파송예배를 드리고 어쩌면 이 땅위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모님과의 헤어짐과 일가 친척, 성도들과의 이별이 사뭇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미래에 펼쳐질 선교의 벅찬 꿈과 더불어 타문화권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에 휩싸여 선교지에 도착하게 된다. 모든 것이 신비하고, 흥미롭다. 조금 불편한 것은 뜨거운 믿음이 녹여버린다. 한층 스트레스가 쌓인다. 한국에서처럼 드리는 새벽기도나 통성기도가 점차 약해져가고, 설교대상자도 없으니 성경을 보는 시간도 줄어들고, 현지교회에 나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와 이해할 수 없는 예배 분위기에 예배드린것 같지도 않고 무엇 인가 잃어버린듯 허전하고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된다. 되어가는 것이 선교사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감과 불안을 안겨준다. 아직 언어 문제나 그 나라 문화에 대하여 익숙하지도 않은 "살아가는 것 조차도 어려운데" 교회를 개척 하라는 등의 요청은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다. 만약 못한다고 거절하거나 미루었을 때에 오는 결과에 대해서 선교사는 불안한 것이다. 주위에서 후원교회의 의사에 따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선교비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사례들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열심히 뛰다보니 경건생활에는 자연히 느슨하게 된다. 따라서 현지인들과의사이에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차이로 말미암아 오해가 생기고 불신 및 불화가 발생하게 되어 결국 선교사의 경건된 모습이 아닌 세상적인 모습들이 현지인들에게 나타나게 된다. 들과의관계에서 그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교제함은 물론 요사이는 한국에서 방문하는 청년, 대학생, 성도들이 많아 그들을 안내하고 보살피는 일까지 늘어 더욱 시간을 빼앗기고 피곤에 지친다. 관계 등) 언어 문제와 문화적응이 어느 정도 되면 사역의 열매를 보게 되어 사역의 늪에 자신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때분터 선교사는 주의 종보다 일의 종이 되어 버린다. 주님을 중심한 사역이 아니고 일을 중심한 사역으로 전락해 버리게 되니 경건시간은 형식적이 되어 버리고 경건생활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일 중심의 생활은 경건생활에 금이가게 하므로 결국 불평과 불만이 싹이 트고 극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선교사간에 현지의 동역자간에 불화가 생기게 되고 나아가 가족에까지 불화가 잦아지게 되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경건생활이 유지되지 못할 때 사탄이 역사하며 가정을 파괴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박살내 버린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과거 사탄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의 방해공작의 전략이 선교사가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철야하며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므로 오히려 선교사에게 능력을 안겨다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선교사로 하여금 일을 많이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바쁘게 만들어 경건생활을 못하게 하고 영적 으로 둔화시켜 교만하게 만들고 자랑하게 만들고 결국 스캔달을 만들어 자멸하게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넘어지면 그동안 이루어 놓은 사역들은 물거품이 될 뿐아니라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한 잡초가 무성한 선교지를 만들게 될 것이다. 오는 비극의 소리이다. 있다면 하나님의 종들간에 이간질을 하여 다툼을 만들어 내고 다툼을 통해 서로 미워하게 하여 결국은 화평을 깨고 불화하게 하여 서로 갈라서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방해한다. 살면서도 이틀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새로 그곳에 온 선교사와도 얼마 안되어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신참의 선교사는 너무도 부끄럽고 괴로워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는데 나이많으 아프리카의 하녀가 조용히 다가와서 "나는 이 선교센터에서 15년간 일해 왔는데 당신들은 항상 우리에게 구세주를 주러 왔다고 말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선교사 여러분의 사이가 구원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욱 넓어진 것처럼 한국교회도 다툼으로 교단이 분열되었고 그 분열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부흥했다고 하며 다툼과 분열을 정당화한다. 이것은 방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극히 비성경적인 발로이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기에 어떤 말로돋 다툼과 분열은 정당화 될 수가 없다.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16:18)"라고 했다. 지식을 남보다 조금 낫게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는 선배도 후배도 없고 어른도 아이도 모르고 사람들을 무시하며 업신여긴다. 이러한 교만이 협력을 저해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한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 앉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선교지에 와서 고생도 많았을 것이고 힘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늘 과시하며 선임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 파고드는 것은 부정직성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기 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하기에 선교보고에서 부정직한 모습이 나타난다.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꽤 한국말도 잘했고 특히 그의 아내가 한국여자이기에 한국문화에 대하여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이 보고서는 90% 이상이 거짓이다. 이 선교사는 내가 초청해서 왔는데... "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사역은 나의 사역인데 왜 네가..." 참석한 모두는 어안이 벙벙하게 되었는 이러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있다. 분명한 관리기관이 없을 경우 선교사의 선교비에 대하여 확인할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누가 체크하든 안하든 성령안 에서 바르게 정직하게 쓰여져야 될 터인데 경건생활에 문제가 있게 되면 크게 시험에 들 수가 있다. 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6-7)"라 하셨다. 또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10:45)" 하시며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요13:12). 종의 태도를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내적인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받으려 호령하면서 제국주의적인 모습으로 사역에 임한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서구선교사들에 의하여 자행되어 왔기에 '양키 고우 홈(Yanki go home)'이란 단어도 만들어지게 된 것인데 한국선교사들 가운데서도 이같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보다 나의 고집을 앞세우며 자기 중심적으로 매사에 임한다. 또한 경쟁적으로 사역에 임하며 영웅주의적으로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으려고 한다. 빠지게 되니 인간이 나타나서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협력이 안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 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여기 본문을 보면 한때는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어느순간 경건생활에 금이 가므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교만에 빠지게 되었고 스캔달을 일으키게 되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7-8)". 그러므로 경건생활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경건생활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경건생활은 훈련을 통해서만 극복이 되며 지속될 수 있다. 이 훈련은 스케줄에 따라서 매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건생활의 훈련을 우리의 삶과 모든 사역에 우선권을 두어 지속적으로 해 가야만 한다. 동안 실컷하고 그 후에는 계속 쉬어도 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숨을 쉬듯이 항상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눅18:1, 살전5:17) 불규칙적으로 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게 된다. 스케줄을 세워놓고 기도하려 하는데 스케줄을 거스리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일이 많아서 시간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게 되면 기도시간이 소홀해진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한번 소홀해지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도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만족시킬 때까지 본능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기도는 그와 같지 않다. 기도는 습관이지 본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란 훈련되어서 습관이 되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셨다(눅22:44). 하나님이신 그 분이 진액을 짜내는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면 비천한 우리야말로 정신 가다듬고 기도해야됨을 절실히 요청받게 된다. 무릎을 꿇은 사람이다."라 외치며 "또한 기도의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단정했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 역사하기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과 밀통하고 있느냐가 능력의 척도가 됨을 부인할 수가 없다. 다고 해서 기도의 실패를 방지할 수 없고 진지함과 부지런함과 연구와 은사도 기도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기도가 없는 전도자느 하나님의 진리를 빙자한 사업가요, 사무원이다." 가 되어 사탄의 궤계를 무찌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규칙적으로 말씀을 릭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들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남을 위해 설교준비하는 식의 성경묵상은 경건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기대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2)"라고 하여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여호수아 1장에서는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지켜 행하게 될 때 형통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늘 생각하며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일을 모든 사역보다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 생애"의 책이나 "위대한 헌신", "죠지 뮬러"같은 책들은 나에게 영적인 생활과 헌신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요사이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영적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들도 많다. 이러한 경건서적을 읽는 것 역시 훈련의 입장 에서 2주에 한권을 읽는다든가 한달에 한권을 읽는다든가의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읽어가야 한다. 한국의 목회자들이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데도 일주일에 한두권씩은 읽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선교지에서는 더욱 영적으로 고갈되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경건서적 독서가 필요하다. 교제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이웃이 없는 가운데에서 많은 날들을 제한된 생활을 하다보니 어것이 병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원하는 것은 물질도 보석도 아니다. 친구가 필요하며, 대화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지에서 가족을 돕는 일은 날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위로와 평안을 얻는 것이다. 왜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재충전의 기회를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집회의 참석이 오히려 영적으로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새겨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열린 마음이 될 때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교육, 재정관리 등으로 인한 또다른 스트레스로 인하여 영육간에 심히 어려운 딜레마에 빠질 수가 있다. 이때는 휴가나 안식 년을 얻어 쉼을 통해서 영적으로 회복이 될 수도 있다. 힘이 되어주시고 위로자가 되어주시며 친히 함께 하셔서 당신의 뜻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그분을 앞세울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왕성하게 세워져 갈 것이다.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경건이 빠져버린 선교사의 모습은 향기없는 꽃과 같고 생기없는 뼈와 같다. 일꾼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 내어놓고 회개하자. 감사보다는 불평, 불만, 원망했던 일들을 회개하자. 주님께서 긍휼이 여기사 치료하시고 새롭게 해 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