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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연구 - Ⅱ. 성만찬에 대한 성서 신학적 고찰 A. 성만찬의 성서적 근거 2. 성만찬의 역사적 기원

호밀64 2012. 6. 26. 09:15

2. 성만찬의 역사적 기원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례전의 하나로써 교
회의 새로운 유월절 식사, 즉 새 계약의 식사이다. 이는 그리스도께
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아남네시스(anamnesis:기
억) 로서, 어린양의 잔치(계 19:9)에 대한 예상으로 베푸신 것이다.
15)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 세례․성만찬․사역
(서울:한신대학출판부, 1982), p.32.

죽음을 눈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한 다락방에 모아 놓으시고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다. 그것은 유
월절 축제의 만찬이었다. 16) I.Howard Marshall, Last Supper and Lord's Supper
(Michigan:William B.Eerdmans Pub. Co., 1980), p.58.
성만찬의 기원은 이 만찬이 있었던 저녁
식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17) 정장복, op. cit., p.182.
이것은 저녁에 있었고 밤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 마
지막 식사 곧 유월절을 지키는 관습적인 한 행위를 위하여 함께 식탁에
앉았다. 예수님은 떡을 취하여 제자들에게 주시고, 다음에 포도주 한 잔
을 가지사 이것을 마시라고 명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만찬은 찬송
한 장을 부르면서 마쳤는데 이 찬송은 114편 또는 115편에서 118편까지의 시편
중에서 한 부분 곧 유월절 식사를 마치는 그 찬송이었을 것이다.
18) A.J.Higgins, The Lord's Supper in the New Testament
(London:SCM Press, 1960), pp.13-21.

신약은 주님의 만찬에 관한 기사를 갖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이것들은 마태복음 26장 17절-30절, 마가복음 14장 23
절-26절, 누가복음 22장 14절-23절 및 고린도전서 11장 17절-34절을
포함한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식사에 관한 기사는 사도행전 2장 42
절-46절, 20장:7절-11절, 고린도전서 5장 17절, 10장 3절-4절, 요한복
음 6장 15절에 기록되어 있고 그 외에도 많이 있다.
19) Franklin M.Segler, 예배학원론 , 정진황 역 (서울:요단출판사, 1984), p.168.
신약에서 그 저녁 식사를 가리키는 용어는 주의 만찬 (고전 11:20), 주의 잔 과
주의 상 (고전 10:21), 축복의 잔 과 우리가 떼는 떡 , 떡을 뗌
(행 2:42), 그리스도의 피에……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 (고전
10:16)과 같이 다양하다. 20) Ibid.

알프레드 엘더샤임(Alfred Eldersheim)은 최초의 이 성만찬 사건
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⑴ 그 장소는 마가 요한의 가정으로 추측되는 큰 다락방이었다.
⑵ 그 시간은 초저녁 또는 밤이었다. ⑶ 그 만찬에서 유월절과 관계
가 있었던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언급이 있었다. ⑷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예수와 12제자에 한하였다. ⑸ 그 식탁에서 사용되었던
성물(elements)은 빵과 포도주였다. ⑹ 예수님은 그 만찬을 예배하는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⑺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받아 먹게 한 후 다시 포도주가 든 잔을 그들에게 주어
마시게 하였다. ⑻ 예수님은 그 빵과 잔의 의미를 설명했고, 하나의
예전으로써 주님의 재림시까지 반복할 것을 명령하였다. ⑼ 그들은
만찬 이후에 시편송을 함께 불렀다. ⑽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식사를
끝낸 후 모두 감람산으로 나갔고 그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
자들과 별도의 장소에서 기도를 드렸다. 21) Alfred Eldersheim,
The Life and Time of Jesus Messiah
(Grand Rapids:Wm B.Eerdmans Publishing Co, 1956), pp.490-512.

이상과 같은 사실은 마가를 비롯하여 복음서의 기자들 모두가 일
치된 견해로, 이것과 함께 지속되어 온 성만찬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유월절 만찬을 성만찬의 근원으로 이의없이 받아들여 왔다.
22) The Interpreter's Bible, Vol.Ⅱ (New York:Abingdon press,
1951), p.73.

그러나 최근에 유대인들의 관습과 성만찬을 비교 연구한 발표들이
나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은 키디쉬(kiddush)라고 불리
우는 유대인들의 랍비와 제자들이 전통적으로 가졌던 식탁에 관한 연
구이다. 23) 정장복, op. cit., p.183.
이 키디쉬는 일반적으로 선비인 랍비와 그의 제자들이 안
식일이나 특별한 명절을 종교적 차원에서 준비하기 위하여 식탁을 함
께 하면서 모였던 것이다. 이때 이들은 간단한 식사로서 빵을 먹었으
며 포도주에 물을 섞어서 서로 돌려 가면서 마셨고, 그 후에 기도를
하였다. 24) William D.Maxwell, A History of Christian Worship (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82), p.5.
이러한 모임은 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무리들에게 경건한
생활의 지속을 위하여 행하여진 것이었다.
이와같은 키디쉬의 행사가 예수와 제자들의 3년간 생활 속에서도
계속 행하여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근거로서는 성만찬을 가리켜 최후의 만찬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껏 키디쉬를 행하여 온 것중의 최후 의 것이라는데서
최후의 만찬 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25) Ibid., p.6.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요한복음서의 관련 기사에서 근
거를 두고 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의 처형은 유월절 준비의 날 혹
은 유월절 전날 즉 니산(Nissan)월 14일에 일어났기 때문에(요
19:14), 유월절 식사가 있는 유월절 예비일에 이미 예수는 처형되고
있으니 이로써 최후의 만찬 은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 유월절 24시간
전에 있었던 유대 종교의 공동 식사인 카버락(Chab rak)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6) Dom G.Dix, The Shape of the Liturgy (London:Dacre
Press,1945), pp.50-70.
그 근거로는 첫째 그 식탁에는 주인이나 또는 지
도자가 있었다는 것, 둘째 빵을 들어 쪼개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예가 있었으며, 세째 식탁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떼어 먹도록 하
는 관습이 있었고, 네째 잔을 들어 축사하고 함께 드는 관습이 있었다
는 점이다. 27) Ibid., p.52.

이러한 견해들에 대하여 지금으로써는 어느 것을 확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러나 비록 그것이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다 하더라
도 최소한 확실한 것은 예수와 제자들의 심정 속에는 유월절에 대한
생각이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28)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Ⅲ (NewYork:Abingdon Press, 1962), p.74.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어떤 형태의 식
탁을 이용했든지 간에 분명히 새로운 성례전으로써 성만찬을 제정하셨
다는 사실이며 그 식탁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단순한 식사만을 나눈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하나의 성례전으로 제정된 최후의 만찬이었다는
것이다. 29) 정장복, op. cit., p.185.

이 성례전 행위의 과정은 다음의 일곱 단계로 세분하여 살필 수
있다.
⑴ 먼저 주님이 빵을 취하셨고 ⑵ 축사하셨고 ⑶ 그것을 쪼개었
으며 ⑷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
라 하셨고 ⑸ 그 후에 잔을 드셨으며 ⑹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⑺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
라 30) Ibid.
고 하셨다.
이상과 같은 7 단계의 성만찬 제정이 곧 개신교 성만찬의 최초 모
델이며 또 가장 근원적인 형태이다. 31) Ibid., p.186.
결국 성만찬은 눈에 보이는 표
징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
하는 성례전적 식사이며, 이 사랑은 예수께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제
자들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인 것이다(요 13:1). 그러므로 이 예전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행하는 것이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참된 임무라 하겠다.

가져온 곳 :
카페 >두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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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