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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연구 - Ⅱ. 성만찬에 대한 성서 신학적 고찰 B.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견해 2.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③ 칼 빈

호밀64 2012. 6. 26. 09:19

③ 칼 빈
칼빈(J. Calivn)은 루터의 공재설이나 쯔빙글리의 단순 기념설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빵과 포
도주와 성례전적 연합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77) 이장식, 기독교 사상사
, 제 2권 (서울:대한기독교서회,1978), p.266.
즉 성령과 말씀 안에서만이 성물은 그것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된다는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적 견해를 취한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실
지로 임재하신다고 믿었으나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감수성
(receptivity)과 관련시켰다. 78) F.M.Segler, op. cit., p.59.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와 그
경험을 바르게 갖기 위해서는 바로 참여자의 신앙이 요구되며 거기에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오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79) 정장복, op. cit., p.199.
그러므로 물과 떡과 포도주는 말씀안에서 약속되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요, 영상이요, 상징이며, 80) Wilhelm Niesel, 칼빈의 신학
, 이종성 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73), p.210.
이와같은 징표와 영상과 상징의 약속이 받는 자의 신앙에 의하여 경험되어
진다는 주장이다. 물질적 요소인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표상과 상징에 불과하며,
그리스도는 떡의 물질에 부가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쯔빙
글리의 기념설과 동일한 견해를 가지지만 성령의 힘에 의해 성례는 일
어남으로 신앙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81) 박형용, op. cit., p.55.
라고 한 주장은 쯔빙글리의 기념설과 다른 것이다.
칼빈은 성만찬은 외형적인 표시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의 증거이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입증이다
82)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an Religion (Phil-adelohia the
Westminster Press, 1967), Book, Ⅳ, ⅩⅣ, p.13.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물(the elements)의 신비성과 거기에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사건을 단순히 집례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여기서 성물이라는 눈에 보이는 표시만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므로 그 약속을 선포하고 , 해석하고, 적
용시켜 주는 말씀의 증거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
고 있다. 83) 정정복, op. cit., p.198.
그때 이 성물과 거기에 대한 말씀을 경청한 무리들이 성
령의 사역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동시적으로 이룩하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례전을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 이란 어거스틴의 사상을 받
아들여 세례나 성찬이 성령으로 우리의 사죄와 은총의 수락을 입증하
는 표징이요 인장이라고 했다. 그는 성령을 성례전의 지배인이라고
했다. 성례전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오직 성례전을 통하
여, 성례전과 함께 은혜가 온다고 했다. 그것은 성령이 성례전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며, 성령이 같이하지 않는 한 성례전은 바르게 집행
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령은 성례전 안에 있는 교사라고 했다. 또 성
례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신앙을 봉헌하는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고백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84) 박형용, op. cit., p.56.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제네바교회 신앙 문답서 에 자세하게 나타나
고 있는 바,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징표로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일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외부적인 증명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약속을 우리 마음에 한층 더 강하게 각인하여 우리가 그 약속을
보다 더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85) 이장식, 기독교
신조사 , 제 1집 (서울:컨콜디아사, 1982),p.193.
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빵과 포도주라는 성물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주님이 세우신 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는 당연성을 표하고, 둘째로
우리는 육체로 덮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적이고 천상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상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음
86) Ibid., p.194.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와 그 경험을
바르게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언약에 대한 선
이해가 요구된다고 했다. 이러한 선 이해는 바로 참여자의 신앙을 재
확인 시키는 것이며 거기에 말씀의 수용이 가능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
속에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87) 정장복, op. cit., p.199.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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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