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쯔빙글리
쯔빙글리(Zwingli)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성만찬에 사용되는 빵
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순한 기념을 위한 표시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행동을 회상케 할 뿐이라는 것이다. 쯔빙글리는 루
터와는 달리 에라무스의 인문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아 신학적인 접근
방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특별히 쯔빙글리는 어떠한 교리도 이성에
모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나 루터는 신학에서 이성의 역할을 거
의 인정하지 않았다. 69) Tony Lane, 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 사상사
, 김응국역(서울:나침판사, 1984), p.275.
이런 차이는 특별히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
도의 현존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역력히 나타났다.
쯔빙글리는 화란의 코넬리우스 호엔의 영향을 받아 1524년에 루터
의 공재설을 거부하고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70) Ibid., pp.278-279.
이런 두 주장의 견해 차이는 사실상 교회
역사상 여러번 대두되었던 실재론적 개념과 순리주의(Spiritualism)적
개념 사이의 대립을 재생시킨 것이었다. 71) J.L.Neve. op.cit., p.383.

쯔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예배에 임재하시며 그의 몸
과 피, 곧 그의 인성은 하늘 아버지 우편에 제한 되어 계시고 성만찬
은 십자가상의 구속적 사역을 회고하는 감사의 기념 일 뿐이라고 하
여 기념설(Memorialism)을 주장 72) Tony Lane, op. cit., p.279.
하였는데, 이와같은 쯔빙글리의 성만찬론은 성만찬의 물질이 예수 그
리스도의 인성, 곧 가시적인 육으로 화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는 승천
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인성의 몸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터와 쯔빙글리의 차이점은 그들의 정신적 태도의 표현으로써,
이것은 나의 몸이다 라는 예수의 말을 휴머니스트들은 이것은 나의
몸을 의미한다 는 것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73) Ingeberg C. Henel,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한국 신학 연구소, 1986), p.326.
그러나 루터는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이해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은
실제로 빵속에 현존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영은 신체적인 것에 의해
서가 아니라, 오직 영에 의해서만이 만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74) Ibid., p.327.

결과적으로 쯔빙글리는 성만찬을 단지 기념적 행위로써 그리스도
의 희생의 기념과 신앙 공동체 의식의 근거로써 단순화시켜 버리는 결
과를 낳게하고 말았다. 75) 정장복, op. cit., p.198.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
으로 보지 않고 기념적 행사로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껏 예배 가운데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가 언
제나 공존했던 것을 분리시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는 성만찬
을 연 2회로 함이 좋다는 견해를 펴 성만찬 예배의 경시 현상을 개신
교에 유산으로 물려주고 말았던 것이다. 76) Ibid.


가져온 곳 :
카페 >두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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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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