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부흥의 세가지 틀
서론 : 주일학학교의 진정한 위기는 무엇인가?
어느 때부터인지 “주일학교가 위기이다”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수적인 성장의 멈춤을 뜻하고 있다. 즉, 우리 어린이들이 예전처럼 교회에 잘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학교 어린이들의 감소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성경학교에 어린이들이 잘 참석하지 않고, 총동원전도주일을 해도 몇 명 모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원인”에 따른 결과이지 위기의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금 교회에 나오고 있는 어린이들조차 쉽게 교회를 떠나는 것이 위기이다. 지금 교회에는 나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떠날 어린이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 위기이다.
이들의 특징은 교회에 나와 앉아 있으면서 절대자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 결과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하고 왔다 갔다 하기 일쑤이다. 기도시간에 눈뜨고 할 일 다 한다. 모든 게 자기 맘대로인 어린이들........ 그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진지한 예배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을 감각하지 못하는 어린이들, 하나님 의식이 전혀 없는 어린이들, 그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어린이들에게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은혜체험이 없는 결과 때문이다. 그렇다. 단적으로 주일학교의 위기는 교회학교의 존재 이유인 구원을 어린이들에게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들이기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애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떠들고 장난하고 딴 짓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은혜체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이런 무 은혜, 무 체험 속에서 아무리 전도를 많이 하면 뭐하는가? 교회에 와서 장난만 치고 떠들고 놀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름성경학교를 거창하게 열면 뭐하는가?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면 뒷문이 휭하고 열려 다시 제자리걸음인데 말이다.
총동원주일을 통하여 어린이들이 교회에 가득 차면 뭐하는가? 어린이들의 마음이 십자가의 보혈로 물들지 못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면 말이다.
이 모든 원인은 교회가 교회의 본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도 좋아졌고 교재도 좋아졌고 교사의 지적 수준도 좋아졌는데 교회의 본질을 놓쳤기에 이렇게 안타까운 한국교회 교회학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공동체, 교회는 예배공동체
교회는 학교와 차별된다. 학교는 어린이의 혼을 책임진다면 교회는 어린이의 영을 책임지는 곳이다. 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코에 불어넣으셨던 생기, 프뉴마이다. 하나님과 통하는 채널이다. 마치 1566 싸이클을 맞추면 극동방송이 들리고 채널 6번을 맞추면 SBS를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주일학교는 영을 책임지는 곳이다. 영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린이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시켜야 한다” 는 것이다. 지옥을 향해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는 어린이의 발걸음을 천국 길로 옮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 거듭나게 해야 할 책임이 교회학교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이유는 바로 영혼구원이다. 지옥을 향해 가던 인간을 천국으로 전환시키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이 보다 더 앞설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 주일학교에 출석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구원의 확신이 없다. 이것이 위기의 실체이다. 우리 주일학교에 나오고 있는 어린이들이 누가 은혜을 체험하여 자발적이며 감동적인 신앙생활을 누리고 있는가. 신앙은 언제부터 싹이 트는가. 구원의 감격이 넘쳐흐르고 예수님의 존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은혜를 받을 때가 아닌가.
진정으로 주일학교의 위기를 통감하는 주일학교만이 그 위기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식적인 믿음은 시험 앞에서 쉽게 넘어진다. 베드로가 하인의 질문에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듯 말이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체험 후 베드로는 로마의 창과 칼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의 행복을 베드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사들이 진정으로 주일학교의 부흥을 원한다면 이 위기를 타개하면 된다. 교회는 예배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매진하면 된다. 꺽이지 않는 무릎을 꺽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온 교사가 기도로 한 목표, 한 꿈을 꾸며 교회학교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가 5명이든 50명이든 5천명이든 반드시 예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요6:63) 거듭나면 모든 것이 다 저절로 된다.
본론 : 살리는 길
살리는 길 1. 찬양의 틀을 세우라
현재 한국 주일학교의 찬양수준은 매우 애석하기 짝이 없다. 찬양이라기보다는 “싱얼롱”식의 함께 노래 부르기조차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다음이 찬양이다. 노래도 안 되는데 무슨 찬양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을 잘하는 교회학교가 되게 할 수 있겠는가?
1)찬양담담교사 임명
교사 수급의 문제가 어렵긴 해도 “찬양담당교사”를 선임해야 한다. 은사가 있는 한 분을 세워라. 그리고 훈련시켜라. 자신이 무단히 노력하게 기회를 주라. 찬양은 가창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학벌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직책이기에 그렇다.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예를 들어보자.
현재 검단중앙교회 교육전도사인 ‘신영옥전도사’는 3년 전에 그 교회에 부임하면서 ‘몸 찬양단’을 조직하였다. 이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당사자인 어린이들은 한 어린이가 100여곡의 몸 찬양을 암송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행복한 어린이들이 되었다. 교회학교성장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이들이 녹음한 동영상이 많은 교사들과 어린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2)찬양이 살아나는 두 가지 지름길
첫째, 선곡의 비밀 : 곡속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주님, 아버지‘의 내용이 하나라도 들어 있지 않으면 과감히 빼 버려라.
‘무슨 곡을 부를까?’ 는 좋은 찬양의 시작하는 문이다. 아무리 반주가 좋고 몸 찬양이 좋아도 선곡에서 실패하면 그 시간은 하나님의 외면을 받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암송의 비밀 : 짧고 쉬운 곡부터 숙련하라.
곡이 길다고 저절로 찬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렵고 힘든 곡이라고 찬양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수님 만나고 싶어요”를 시작하여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샤론의 꽃”, “좋으신 하나님” 등등 주옥같은 곡들을 암송하며 부르라.
기존 찬송가에서 놓치지 말 곡들:144, 214, 300, 411 등등
이제 시간문제이다. 찬양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고(수6:1-21),찬양은 묶인 것을 풀어주며(행16:25-34), 찬양은 인간의 본분이다.(사43:21) 어린이들도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일단 찬양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뜨거운 한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정신없이 먹듯이, 바람 몰아치는 겨울밤에 군고구마를 달콤하게 먹듯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붙잡혀 그 분 때문에 기뻐하고 그 분 때문에 울고 그 분 때문에 살맛을 찾는 생동감 있는 신앙생활을 누리게 된다.
사실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맑고 깨끗하기에 더 깊이 더 폭 넓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1996년 7월18일 어린이 은혜캠프에서 있던 일이다. 집회를 인도하던 중 찬양을 인도하다가 문득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들, 찬양과 노래가 같은 가요 다른가요. 아는 사람?” 이쪽저쪽에서 “저요!. 저요!” 오른손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마침 바로 앞에 있는 어린이에게 지적했다. “네, 노래는 그냥 부르는 거구요,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 어린이는 정확하게 말한 것이다. 또한 그 어린이는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실재로 찬양 중에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고 큰 은혜를 받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찬양은 하나님과 잘 통하는 길이다.
어떤 어린이가 찬양하며 왔다 갔다 하는가?
어떤 어린이가 찬양 중에 장난을 치는가?
어떤 어린이가 찬양 중에 딴전을 피우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보고 계시고 나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고 복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린이는 말이다. 찬양을 잘하는 주일학교, 결코 꿈만은 아니다. 희망사항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찬양의 틀을 어서 세우라. 성령님께서 역사 해 주실 것이다. 교회학교가 변화될 것이다.
살리는 길 2. 기도의 틀을 세우라
주일학교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기도를 너무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상하리 만치 기도를 못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기도가 잘 안되는데도 그 처방을 내리지 못하는 교사들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스스로 안위한다. “아직 어리니까 그럴거야. 조금 있으면 언젠가 잘하겠지!” 언젠가 잘되겠지 하는 사람들 치고 정말 잘하는 경우가 있는가?
어린이부흥회에 가면 가끔 나는 물어 본다.
“여기 교회에 나온 지 6년 지난 어린이? 가만 들고 있어 봐요. 그래 많구나, 5년 지난 어린이? 4년 지난 어린이? 일년 지난 어린이?”, “그럼 자신 있게 지금 기도할 수 있는 어린이는 손을 내려봐요. 아니 일년이나 넘게 교회에 나왔는데 기도를 못해요? 6년이나 넘게 출석했는데 기도를 못해요?“ “그럼 이번 부흥회에 기도 잘하고 싶습니까”
“큰 소리로 아멘 해 보세요”
“기도를 잘하고 싶어요?” “아멘”
그렇다. 교회에 출석한지 오래된 아이들도 자신 있게 기도를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교회학교의 현실이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면 뭐하는가? 아무리 아브라함을 알고, 모세를 알고, 베드로를 알면 뭐하는가. 기도를 못하는..... 오히려 그런건 잘 몰라도 기도를 잘하는 어린이가 장래에 소망 있는 인물이 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어린이들이다.
기도는 기도자의 사모함과 훈련의 결과이다. 할수록 더 잘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런데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도를 안 가르친다. 그 결과로 어린이들이 생명력이 없다. 예배 시간에 잘 떠든다. 프로그램이 좋지 않아서 어린이들이 떠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떠드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기도를 가르치라.
(1) 확실한 가르침
1) 기도의 정의 : 기도는 영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가르켜 주어야 한다.
2) 기도의 자세 : 모든 것은 자세가 있다. 식사하는 것, 잠자는 것, 일하는 것, 기도도 자세가 있다. 일단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야 기도가 된다. 이것을 지나치면 기도가 안된다. 딴전을 피우게 된다. “두 손을 예쁘게 모아 정성스럽게 가슴 앞에 모으고 겸손히 예수께 감사하듯 고개를 숙이세요“라고 분명하게 기도 자세를 안내한다.
3) 기도의 순서
기도는 순서가 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순서도 없이 중언부언할 수는 없다.
1. 하나님을 부르세요.(하나님, 아버지, 고마우신 하나님 등)
2.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세요.(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절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3. 용서를 구하세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내 맘대로 살았어요. 내 고집대로 살았어요. 엄마에게 대들기도 잘 했고 거짓말도 잘했어요. 이 시간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주세요.)
4. 부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절 사랑하시죠? 절 좀 붙잡아 주세요. 절 좀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5.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기도훈련
첫째, 기도제목을 분명히 해야한다. 도는 관심과 연결된다. 어린이들의 관심, 요구, 바램을 지도자는 확인해야 한다.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회개기도? 왠지 어울리지 않죠. 그 땐 지혜를 구하고 믿음을 구해야 어린이들이 바짝 달려들어 기도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겐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하면 제시할수록 기도문이 열리게 된다. 갑자기 기도 줄을 잡게 된다.
둘째, 다양한 기도의 접촉점을 찾으라.
짝 기도, 통성기도, 스텐딩기도, 통곡의 벽 기도, 터널기도 등등
살리는 길 3 : 예배의 틀을 세워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학교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어린이들이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간식이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선물에서 은혜를 받으면 안된다. 그것은 생명을 주지 못한다. 그것이 생명을 주는 도입부는 될 수 있지만 그것에 목매다가는 예산낭비만 하고 만다.
예배에 성공하기 위하여 최선의 준비가 요구된다. 선생님들 스스로가 이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아무런 기대 없이 기도 없이 노력 없이 그 어떤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다. 진정한 영혼구원과 어린 영혼을 사랑한다면 지금의 교회학교 예배 분위기를 확 뜯어 고쳐야 한다.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 속히 장난분위기에서 은혜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결론 :
주일학교는 반드시 부흥해야 하며 부흥하는 길이 분명히 있다. 부흥하는 교회학교는 은혜가 풍성한 주일학교이다. 영혼이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어린이들이 모인 주일학교이다. 그 교회는 찬양이 살아있다. 기도가 살아있다. 예배가 살아 있다.
주일학교의 부흥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주일학교 부흥의 때가 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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